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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03 나 자신 되찾기 2
- 2007/07/02 여름 날
- 2007/07/02 언제나 한결 같은 산처럼
- 2007/06/27 태터툴즈 흑역사 (1) 11
- 2007/06/27 겨울을 난 꽃 4
- 2007/06/26 꿈 2
- 2007/06/22 Garbage code 2
- 2007/06/22 지적 사춘기 10
- 2007/06/21 webappscon에서 3
- 2007/06/21 존경하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2
나 자신 되찾기
머리아픈 이야기 2007/07/03 22:37초등학교 1학년 때, 빨간 유리색연필 하나를 준비하지 못한 것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회초리를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모든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외쳤습니다. 이것은 내가 잘못한 것에 비해 부당한 처벌이라고.
중학교 2학년 때, 국어시간에 문법을 배우는 단원에서, 문법 규칙마다 항상 예외가 보이길래 매 시간 선생님께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주변 아이들은 진도 안 나간다며 잘난 척하지 말라고 절 비난했습니다. 국어 선생님은 절 인정해주시면서도, '교만'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저는 항상 자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설령 제가 아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항상 다 표현하지 않았지요.
물론 자만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 교만을 떨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자체는 지금도 지키고자 하는 신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자만과 교만의 기준이 바뀌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앞으로 만들어갈 가치관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사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겁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한국 사회에 과연 '나'라는 존재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공교육에서 요구하는 뭐든지 다 잘해야 하는 전인적인 인간상, 조직과 회사를 개인보다 더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열악한 근무 환경과 노동 조건, 너도 나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영어/외국어 열풍,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선진국에 대한 사대적 태도.
'우리'라는 말은 정겹고 따뜻한 말이지만, 이것이 '나'를 상처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따져야 합니다. 권위와 지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것을 지켜가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갈 수도 있지요.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관에 대해 자신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이해 수준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옆에 있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지적 사춘기를 시작하면서, 가끔은 반항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도 용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자연히 그 안으로 들어오려는 다른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것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기술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는 제 생각을 관철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고집을 다시 되살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해야겠습니다.
인 것은 인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지요. 이것을 잘 구분하는 한국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억눌려왔던 제 자신의 본성을 찾고, 이것을 사회화 과정의 긍정적인 산물로 활용하고 싶습니다.
ps. 저희 집에는 부득이한 사정 등으로 성당에 빠졌을 경우, 고해성사를 보기 전까지 성체를 모시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저는 그 룰을 깼습니다. 교리 상 그럴 이유도 없을 뿐더러 미사에 다른 사람들이 줄서서 나가는 것을 비켜주느라 신경쓰는 등의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름 날
따뜻한 이야기 2007/07/02 23:55장마철입니다.
이번주를 지나 다음주 정도면 이 장마도 거의 끝나갈 듯싶은데,
다른 지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올핸 아직까지 장마로 인한 며칠동안 계속되는 폭우나, 태풍의 피해가 아직은 없는 듯 싶습니다.
시골에 살았었고 지금도 본가는 시골에 있는 제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여름날의 장마나 폭우, 그리고 태풍의 심적 부담감은 족히 알고 있습니다.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다음주 주말의 일요일엔 본격적인 여름 날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무더운 날씨에 흐르는 땀에, 높은 습도에 찌푸리는 얼굴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태풍이나 와서 이 더위를 날려버렸으면 하는 맘도 생기게 되죠.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다가 '매미'와 같은 악성코드, 아니 강력한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비가 오면 바빠집니다.
오랜 가뭄이었다면, 달콤한 간만의 비가 땅을 달래 씨앗을 피우게 될땐 하나라도 더 심어야 심어야 한다는 맘에 그 비에 우비도 멀리하고 뛰쳐나가 비를 다 맞으며 씨앗을 뿌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비가오면, 땅만 살랑살랑 맘을 달래게 되는 건 아닙니다. 온갖 병충해들도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비를 다 맞으며 애지중지 키워놓은 새싹을 갉아먹는 녹색의 벌래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좋지않다며 유기농을 외치지만, 농부의 입장에선 유기농을 내세우기엔 요즘같은 오염이 심한 세상에서 수많은 병충해를 이겨내기엔 농약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비가 그치자마자 뛰쳐나가 바로 농약을 해야만 하게되죠.
벼 농사를 짓는 분은 비가 오면 논의 물코를 막거나 열기 위해 삽을 어깨에 걸치고 논길을 걷곤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TV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애향캠페인의 그림에 나오는 한 장면일 듯 싶습니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시골의 싱그럽거나 추억의 모습을 이쁘게 보여질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삶의 방식이며 터전입니다.
올해도 이 장마를 지나 무더운 여름 날의 태풍 등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헤하는 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heonkwon
언제나 한결 같은 산처럼
즐거운 이야기 2007/07/02 01:08얼마 전 직장 연수로 속리산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1년에 한번은 가보는 곳이지만 연수라는 타이틀을 걸고 가서인지 조금은 내키지
않는 산행였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몇 번을 와도 어딜 가도 산 공기는 삶의 피로를 확... 없애주는 좋은 정화제 인듯합니다.
한 모금의 숨을 들이켜도 온몸과 마음이 시원해 지는 것이 정말 날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산행은 가볍게 천황봉까지만 가기로 하고, 다른 코스는 다음을 기약하고... 짧게 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일찍 출발하지 못한 관계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이 천황봉에서의 일출은 정말 멋지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산이든 일출은 모두 좋은 것 같네요.^^
출처:속리산 국립공원
몇 번 찾은 산이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주는 그런 산였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든든하게 산의 품에서 쉬고 가라고 손짓까지 하는듯..
항상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산인 듯싶습니다. 이런 산에 갈 때면, 간혹 중심 못 잡고 빙빙 도는 자신을 반성하게 합니다. 주위에도 이리저리 둘러보면 이렇게 자리 못 지키고 빙빙 도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것들이 바로 서야 아마 세상이 바로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웹의 형태 또한 중심을 못 잡고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런 혼란함 속에서 Textcube가 중심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본이 되길 바랍니다.
태터툴즈 흑역사 (1)
머리아픈 이야기 2007/06/27 22:21텍스트큐브 1.5가 이제 베타 페이즈가 눈앞입니다. 그 전에 태터툴즈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야 될 것 같다는 혼자만의 걱정? 으로 태터툴즈의 비사秘史를 적어볼까 합니다. 절대 지난 글에서 '너무 솔직했다' 고 면박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적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사용하는 태터툴즈의 경우 순백?의 태터툴즈이지만, 그 개발 이면에는 태터툴즈를 구성하는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둘러싼 짤림과 연기와 논쟁의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기전체로 적느냐 편년체로 적느냐하는 쓸데없는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타자 가는대로 한 번 적어 봅시다.
하나. project lint.
비운의 프로젝트이면서 네번째 구현이 얼마전에 토의되는,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를 가진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의 역사가 TNF의 역사와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작년 중순, 태터툴즈의 다중 사용자 모드에서 전체 글들을 볼 수 있는 '센터'를 추가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한 lint는, 담당하겠다고 하신 분이 배를 땅에 묻어 버리는 바람에 6개월간 소강 상태에 있었습니다. 태터툴즈 1.1의 변화가 너무 많았고, 동시에 잘라 나가는 부분도 워낙 많아서 다른 참여자들이 lint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지요.
결국 lint는 WOC[footnote]Winter Of Code의 약자입니다.[/footnote]의 프로젝트로 제안이 되었고, 지원하신 분들 중 한 분이신 corgan님이 구현을 맡아 만드셨습니다. 문제는 이후에 있는데, corgan님이 구현해 오는 여러 방법들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독립 프로그램 형식으로 제작되었던 첫번째 구현과, 라이브러리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기존의 스킨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두번째 구현이 전부 '죄송합니다' 가 되었지요. 이후 다양한 확장성을 위하여 센터 플러그인의 스키마를 그대로 가지고 가기로 하고 만들어진 세번째 구현도, 스킨 호환성에 영향을 준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그대로 좌초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형태까지 왔습니다. j.parker님과 의논하길, 좀 폭이 넓은 사이드바...형태로 가면 어떻겠느냐 - 그 경우 2단 처리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 등등의 의견이 오가서, 아직 결론을 못 짓고 있는 부분이지요. 머릿속에 형태가 잡히지가 않는 그런 단계입니다.
둘. project drizzid
이건 일단 묵념.
셋. project patchworks
이름의 역사가 좀 있습니다. 원래 호환성을 최대로 하는 설치형 위젯 시스템으로 계획된 patchworks는 quilt로 이름이 바뀌고, 이후 전체 프로그램을 모듈화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patchworks가 재사용 되었습니다. WOC와 동시에 시작된 TOP의 시범 케이스로, lifthrasiir님께서 우선 에디터와 포매터를 밖으로 떼어 냈지요.
새로운 포매터와 함께 (대전 태터캠프에 오신 분들께서는 실컷 졸면서 들은 그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입니다) 도입될 예정이던 patchworks는 예상외의 부분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양한 포매터를 지원할 경우, ttxml형태의 백업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전부 HTML로 포매팅을 할 경우, 이후 불러와서는 갤러리등의 경우 편집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포매터의 문법을 그대로 내보낼 경우, 다른 '프로젝트 태터툴즈' 프로그램들에서의 호환성이 보장되지가 않지요. 몇가지 고려를 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lifthrasiir님 어디가셨나; )
넷. project guild
작년 중순부터 차기 목표로 계획되었지만 역시 짤린 케이스. 이올린을 이용하여 여러개의 블로그를 주제로 묶은 블로그를 만들 수 있게 하자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작년 이맘때 굉장히 토론이 많이 되었었던 부분이었지요. 결정적인 약점 때문에 그 길었던 논의에 비하면 잘리는 건 빨랐습니다.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수요가 없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블로그들을 묶어 블로그로 보여 주는 것으로는 블로그를 커뮤니티적인 성격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구현 단계를 고려해보니 단순히 묶는 것 만으로는 아무런 새로움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간의 커뮤니티를 묶어서 보여준다거나, 주제에 따른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이올린 등의 서비스 의존성이 있으면 참여 동인이 줄어듭니다. '지속성'의 문제가 생기고, SNS로서는 매력을 빨리 상실하게 되지요. 서비스형 게시판이 순식간에 퇴색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drizzid가 시작되었지만, 산으로 가다가 지금은 텍스트큐브 1.5에 밀렸습니다. 굳이 필요하면 라지엘님이 만드신 설치형 블로그 센터인 Wing을 쓰면 되니 이후 Wing의 라이트버전을 텍스트큐브에 통합하는 쪽으로 나갈지도 모르겠네요. 또는 Wing의 구현을 일부 원용해서 drizzid를 구현하게 되겠지요.
목록 여덟개 중 나머지는 (2)로 아껴두고 일단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
겨울을 난 꽃
즐거운 이야기 2007/06/27 17:35그런 겨울을 한 번 보내게 했으니 올 봄만큼은 가만 놔둬야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왠만한 봄꽃들이 다 피고 지고 나서도 잎들이 나올 생각을 안하더군요. 그러길 6월 한달사이에 잎들이 풍성하게 나오더니 꽃을 피워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작년에는, 뿌리좀 뻗느라고 신경 못썼나봅니다.
아마 지난 겨울에 된통 추워놔서 겨울이 지난줄 알았나봅니다.
아마 올해는 준비된 꽃눈들이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올라왔나봅니다.
아싸아~~
입술 앞부분만 빨간색으로 바른듯 예쁜 클레로덴드럼을 소개합니다...!
꿈
따뜻한 이야기 2007/06/26 23:31우리의 한글에는 동음이의어[footnote][명사]<언어> 소리는 같으나 뜻이 다른 단어. ≒동음어[/footnote]라는게 있습니다.
물론 영어나 다른 언어권에서도 종종있긴하지만, 이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한 억양의 차이나 발음의 길이 차이로 이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꿈
[명사]
1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2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 네이버 국어사전 주
어렷을 적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었을겁니다.
제 어렷을 적 꿈은 논길을 뛰어다니고, 숲속에 자라는 봄날의 새잎을 뜯어먹고, 여름날 언덕에 열린 산딸기(지금으론 유명해진 복분자 류)를 따먹고 다니고,
30여가구 되는 마을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그 때엔,
시골에선 TV나 각종 미디어 매채에서 문명과 과학의 발달이 신기하기만하였답니다.
그 당시의 남자들의 열에 일고여덟은 꿈이 과학자라고 할만큼이었으니 그 꿈의 가치는 정말 대단하였죠.
뭐 그 때엔 대통령이나 의사가 보다 그게 더 높아보였으니까요.

'꿈이 없다면 삶의 가치가 있을까' 라는 말은 무시되기 쉬울만큼 세상은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었죠.
이대로 나아가 과연 내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루고픈 꿈이 어느순간 흐리흐리 해지더니 꿈나라의 꿈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내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 그 모습을 보는 것일 뿐.
그리곤 대학생활을 거쳐 지금의 사회생활에 있는 제겐 꿈속에서도 볼 수없는 어찌보면 실현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가 되어버린듯 싶습니다.
꿈이 바뀐거겠죠.
단어도 틀리고 의미도 달라 말장난인듯 싶지만, 꿈=목표, 꿈은 인생의 목표다 라고 합니다.
목표는 바뀌기 마련입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왜 이루지 못했는지 정도는 뒤돌아 볼 필요는 있습니다.
뒤돌아보세요.
그럼 거기에 또 다른 내가 서 있을 테니까요.(납량인가)
어쩌면 고개숙인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테고, 괜찮아 괜찮아. 그 길이 더 좋은 길이야 라고 손흔들며 웃음짓고 있을지도 모르죠.
꿈은 (간혹) 이뤄지라고 있는겁니다.
누군가는 이뤄냈던것이기에 꿈이라는 단어를 쓴것이고.
절대 이뤄낼 수 없는 것이라면 꿈이라는 단어가 아니고 다른 단어로 쓰였겠죠.
참 우리의 말은 이렇게도 쓰이고 저렇게도 쓰이는게 대단하기만 합니다.
앞서 말한 동음이의어로 꿈이 간혹 맘을 아프게 해도 그냥 쉽게 주저앉지 말자구요.
오늘도 굿!~모닝!
Garbage code
머리아픈 이야기 2007/06/22 10:27얼마 전부터 기존 작업해 놓은 프로그램 코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 작업해야 하는 항목도 있지만 기존 작업 물에서 변형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에 대대적인 정리를 해야만 하는 사정입니다.
이리저리 정리를 하다보니 왜이리 꼬인 부분이 많던지 도대체 누가 이렇게 처리했는지 갑갑하더군요.
뺄건 빼고 다시 넣을 건 넣고, 이렇게 작업한지 며칠에서야 전체 프로그램 코드 중 정리처리 되어야 할 부분이 약70군데 정도 이었습니다. 처리 대상 부분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기존에 버벅거리던 프로그램도 처리속도가 향상된 것 같아 보입니다.(어디까지 제 느린 눈으로 봤을 때..^^) 아직도 찾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층 가벼워진 프로그램이 감사해 할 것입니다.
뭐든지 동일한 여러 개의 모듈과 사용되지 않는 모듈들은 자원 낭비인 듯 합니다.
예전 초기시절엔 프로그램 작업을 마구마구 넣기 방식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하면 잘 돌아 가겠지 요렇게 하면 멋있겠지.. 등등.. 그렇다고 사용자가 프로그램 내부를 보고 와 코드가 많다고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뭐든 가볍게 하기 위해 코드 체계화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추후 관리도 용이해지고, 프로그램 차체도 가벼워진다는 것을 체험하였기에 그리하고 있습니다.
조금 차가운 말이겠지만, 일상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정리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개인마다 생활 패턴이 다르겠지만, 정리되어야 할 것은 과감히 정리해야만 뒷끝없이 깔끔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리하지 못해 아직까지 찜찜한 것들도 간혹 있네요.~~
한마디로 정리 잘하고 살자는 이야기 이었습니다.~~
ps.요즘 Textcube내에서도 이러한 정리 작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보다 가볍고, 빠른 그리고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지적 사춘기
머리아픈 이야기 2007/06/22 04:32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은 글이 잘 써지는 시간입니다. 때이른 초여름 더위가 지나고 습한 공기와 함께 장맛비가 찾아왔습니다. (생활리듬 shift된 걸 얼른 되돌려야 할 텐데 말이죠. orz)
요즘, 저는 제가 지적 사춘기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신체적으로야 뭐 징그러울 만큼-_- 자랐으나, 내적으로는 어쩌면 방황의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 무심코 믿었던 종교, 또 무심코 흥미삼아 반신반의하며 봤던 각종 UFO 관련 책들, 과학고와 KAIST에 진학하면서 배운 많다면 방대하고 적다면 쥐뿔만큼 적은 과학 지식들, 초중고를 거치며 들었던 선생님들의 여러 말씀들, 부모님과의 심도 있는 대화, 친구들과의 대화. 피아노를 치면서 느끼는 희열, 내가 작곡한 곡과 내가 그린 그림들, 그것을 본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 수많은 책과 블로그에서 흘러나온 문자들. 그리고 종교와 철학.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과 경험이 갑자기 새롭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프트웨어공학개론 때문에 지나치게 빡센 학기를 보내면서 심신이 피폐(?)해진 탓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제 또래의 친구들이 대충 저와 같은 지식 수준을 갖추면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한 경로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지식 수준이라는 것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 외로 종교와 철학, 그리고 세상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깊이있는 고민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단지 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고, 왜 하는지 관심도 없어보였습니다.
당장 응용미분방정식 기말고사 망해서 재수강이 사실상 확정이고 알고리즘 교수님이 꿈에 나올 정도로 시험 성적이 불안하지만, 저는 제가 현실에서 처한 모든 상황을 떠나 거시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 그 자체에 대해 바라봅니다. 전에 올렸던 글에서 길가다가 꽃이 핀 걸 보고 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까에 대해 썼던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제게 제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는 그 하나하나가 가치있는 것이고 또한 아름답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뇌가 쉬 피로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학기에 들었던 전산학 세미나 수업에서 레이 커즈와일이 쓴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추천해서 읽어보았습니다. 패턴주의자인 그는 기계가 초지능을 갖게 되고 인간을 능가하는 바로 그 순간을 특이점이라 부르면서,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다라는 인식을 거부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신체, 혹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계 속에서 정밀한 패턴을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모태신앙으로서 갖고 있던 기독교(가톨릭)에 대해 품고 있던 회의와 의문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동물과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과연 인간을 인간답다고 정의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신이 있다면 왜 신은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게 했고,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것들을 과학기술을 이용해 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지난 제2차 태터캠프 때 제 발표를 들으셨던 분들은 무슨 얘긴지 아실 겁니다. :)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독실한 신자이신 부모님과도 얘기해보고, 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친구와도 얘기해봤습니다. 따로 종교를 믿지 않는 친구하고도 얘기해보구요.
대체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특이점이 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이 막으실 거라고 얘기합니다. 환경 재앙이든 전세계적인 전쟁이든 뭐든 간에요. 종교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자기 자신을 믿으면 되는 것이고, 때가 되면 알아서 살게 되겠지-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이점이 올 가능성이 있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인간은 인간 고유의 영역에 남아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나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와 다르게 인식되는 그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의식이란 건 기본적으로 주관적 체험에 기초하기 때문에, 그 어떤 논리와 과학으로도 100% 객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로지 종교적 믿음이나 개인의 신념에 의해서만 가능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정교하게 엮어진 분자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사람들이 말하는 사후세계, 정신세계라는 것은 특이점의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궁극적으로 저는 제가 알고 경험해본 다양한 신념체계를 통합하고 싶습니다. ('합리적'이라는 과학조차도 넓게 보면 하나의 신념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모순되는 점이 너무나 많아서, 지금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죠. 심정적으로는 신을 믿지만, 이성적으로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혹은 거꾸로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정교함은 과학만으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건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사실 그 신이라는 것도,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인지, 범신론적 관점의 신인지에 따라 또 다르지요.
마치, 제가 가진 모순점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제 삶은 계속되겠지만, 끝없는 좁은 터널을 지나는 기분일 겁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들이 하나의 공통된 원리를 제게 보여줄 때 느끼는 그 희열을 느껴봤기에, 인류가 저에게 물려준 다양한 신념체계들을 어떤 식으로든 저 자신의 자아 내부에서 통합하는 일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또 제가 앞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선택과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TNF 활동을 해오면서 inureyes님이 쏟아내시는 paper work과 각종 발표 등을 보면서, 또 개인적으로 나눈 여러 대화를 통해, 어떻게 해서 저런 넓은 시야와 직감을 가지고 계실까 사뭇 궁금했었습니다. 얼마 전에 메신저로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제 나이 무렵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철학과 종교학, 예술학 쪽에 굉장히 심취하셨던 기간이 있으시더군요. 계절학기를 통해 서울 쪽의 대학 도서관들을 다니며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놀라운 통찰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직접적으로 저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해주시기는 어렵겠지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는 가치 기준을 만든 것이죠. 저는 바로 그 과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인류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접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그 중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 있는 정보가 지닌 잠재력은 더욱 올라갑니다. 저는 전산학을 배우면서 그러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더 높이 승화시키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요. 그것을 위해 일종의 지적 사춘기를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기나긴 여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webappscon에서
즐거운 이야기 2007/06/21 21:00webappscon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10분짜리 발표를 하나 하게 되어 했는데, 망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을 못했지요. 앞으로 사고가 좀 있었습니다 ^^ 하나 얻은? 수확이라면 의외로 태터툴즈를 아는 사람이 많다는 정도였습니다. (전 완전히 마이너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혹시 참석자들이 IT 계열이라 다들 아시는건가?)
다음에 발표때 못다한 이야기를 다른 글로 써 볼까 합니다. :)
20070621 webappscon.pdf프리젠테이션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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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컨퍼런스에서 얻은 수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에 대한 부분입니다. 오프라인의 수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장소를 옮기거나 복제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된 흐름이었다면, 이제는 온라인에서 태어난 것들이 오프라인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자주 보게 될 듯 합니다. 고전적으로 flash나 silverlight등과 같은 형태를 통하여 오프라인에 의존적인 온라인 환경이 늘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후에는 온라인의 프로그램을 넘어 문화 자체까지도 전파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태깅으로 음식물을 찾는 냉장고라거나?-
그러한 변화의 속도는 굉장히 빠를 겁니다. 웹 어플리케이션 컨퍼런스의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과감하게 예측하는 이유는, 앞에 붙은 '웹'이라는 수식어가 언제까지 의미가 있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플리케이션 컨퍼런스'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덕분에 재미있는 생각들을 여러가지 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
존경하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따뜻한 이야기 2007/06/21 20:38여러분은 존경하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초등학생인 조카들에게 물으니 없다고 하고, 좀 나이먹은 중고등학생 조카들에게 물으니 역시나 없다고 하는군요. 존경하는 인물이 없다니,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걸까요,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걸까요?
저의 베스트 프렌드처럼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인 경우까지는 못 되더라도 한창 젊은 나이에 존경하는 인물이 없다니, 작금 대한민국에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나보다 뛰어난 인간 못 봤다'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군요.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이상향이 되는 어떤 정점이 존재하며, 그 대상이 이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존경하는 인물의 존재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에게 언제나 겸손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니 꿈도 없고, 교만함에 가득찬 요즘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이군요.
이휘소 박사님의 기념관이 고려대학교에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어보았습니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읽히던 물리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한국인 이름에 두근두근거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footnote]원서에는 대부분 이 박사님의 미국명인 Benjamin Lee라고 적혀 있지요.[/footnote] 복잡계 과학에서 정하웅 박사님 이름을 항상 찾아볼 수 있게 된 것과 함께, 아마도 물리학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단 두 명의 한국인이라 하면 이 분들을 일컫는 것이겠지요.[footnote]물리학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 교주님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무척 뻘줌하군요.[/footnote]
조만간 시간을 내서 고려대를 방문해보아야겠습니다. 가는 길에 트랜스포머도 보고 오면 되겠군요.
비밀방문자 2014
inureyes 2014
비밀방문자 2013
화사함 2012
LonnieNa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