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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22 지적 사춘기 (10)
지적 사춘기
머리아픈 이야기 2007/06/22 04:32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은 글이 잘 써지는 시간입니다. 때이른 초여름 더위가 지나고 습한 공기와 함께 장맛비가 찾아왔습니다. (생활리듬 shift된 걸 얼른 되돌려야 할 텐데 말이죠. orz)
요즘, 저는 제가 지적 사춘기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신체적으로야 뭐 징그러울 만큼-_- 자랐으나, 내적으로는 어쩌면 방황의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 무심코 믿었던 종교, 또 무심코 흥미삼아 반신반의하며 봤던 각종 UFO 관련 책들, 과학고와 KAIST에 진학하면서 배운 많다면 방대하고 적다면 쥐뿔만큼 적은 과학 지식들, 초중고를 거치며 들었던 선생님들의 여러 말씀들, 부모님과의 심도 있는 대화, 친구들과의 대화. 피아노를 치면서 느끼는 희열, 내가 작곡한 곡과 내가 그린 그림들, 그것을 본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 수많은 책과 블로그에서 흘러나온 문자들. 그리고 종교와 철학.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과 경험이 갑자기 새롭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프트웨어공학개론 때문에 지나치게 빡센 학기를 보내면서 심신이 피폐(?)해진 탓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제 또래의 친구들이 대충 저와 같은 지식 수준을 갖추면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한 경로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지식 수준이라는 것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 외로 종교와 철학, 그리고 세상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깊이있는 고민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단지 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고, 왜 하는지 관심도 없어보였습니다.
당장 응용미분방정식 기말고사 망해서 재수강이 사실상 확정이고 알고리즘 교수님이 꿈에 나올 정도로 시험 성적이 불안하지만, 저는 제가 현실에서 처한 모든 상황을 떠나 거시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 그 자체에 대해 바라봅니다. 전에 올렸던 글에서 길가다가 꽃이 핀 걸 보고 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까에 대해 썼던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제게 제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는 그 하나하나가 가치있는 것이고 또한 아름답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뇌가 쉬 피로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학기에 들었던 전산학 세미나 수업에서 레이 커즈와일이 쓴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추천해서 읽어보았습니다. 패턴주의자인 그는 기계가 초지능을 갖게 되고 인간을 능가하는 바로 그 순간을 특이점이라 부르면서,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다라는 인식을 거부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신체, 혹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계 속에서 정밀한 패턴을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모태신앙으로서 갖고 있던 기독교(가톨릭)에 대해 품고 있던 회의와 의문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동물과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과연 인간을 인간답다고 정의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신이 있다면 왜 신은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게 했고,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것들을 과학기술을 이용해 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지난 제2차 태터캠프 때 제 발표를 들으셨던 분들은 무슨 얘긴지 아실 겁니다. :)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독실한 신자이신 부모님과도 얘기해보고, 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친구와도 얘기해봤습니다. 따로 종교를 믿지 않는 친구하고도 얘기해보구요.
대체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특이점이 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이 막으실 거라고 얘기합니다. 환경 재앙이든 전세계적인 전쟁이든 뭐든 간에요. 종교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자기 자신을 믿으면 되는 것이고, 때가 되면 알아서 살게 되겠지-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이점이 올 가능성이 있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인간은 인간 고유의 영역에 남아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나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와 다르게 인식되는 그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의식이란 건 기본적으로 주관적 체험에 기초하기 때문에, 그 어떤 논리와 과학으로도 100% 객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로지 종교적 믿음이나 개인의 신념에 의해서만 가능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정교하게 엮어진 분자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사람들이 말하는 사후세계, 정신세계라는 것은 특이점의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궁극적으로 저는 제가 알고 경험해본 다양한 신념체계를 통합하고 싶습니다. ('합리적'이라는 과학조차도 넓게 보면 하나의 신념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모순되는 점이 너무나 많아서, 지금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죠. 심정적으로는 신을 믿지만, 이성적으로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혹은 거꾸로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정교함은 과학만으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건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사실 그 신이라는 것도,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인지, 범신론적 관점의 신인지에 따라 또 다르지요.
마치, 제가 가진 모순점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제 삶은 계속되겠지만, 끝없는 좁은 터널을 지나는 기분일 겁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들이 하나의 공통된 원리를 제게 보여줄 때 느끼는 그 희열을 느껴봤기에, 인류가 저에게 물려준 다양한 신념체계들을 어떤 식으로든 저 자신의 자아 내부에서 통합하는 일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또 제가 앞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선택과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TNF 활동을 해오면서 inureyes님이 쏟아내시는 paper work과 각종 발표 등을 보면서, 또 개인적으로 나눈 여러 대화를 통해, 어떻게 해서 저런 넓은 시야와 직감을 가지고 계실까 사뭇 궁금했었습니다. 얼마 전에 메신저로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제 나이 무렵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철학과 종교학, 예술학 쪽에 굉장히 심취하셨던 기간이 있으시더군요. 계절학기를 통해 서울 쪽의 대학 도서관들을 다니며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놀라운 통찰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직접적으로 저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해주시기는 어렵겠지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는 가치 기준을 만든 것이죠. 저는 바로 그 과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인류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접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그 중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 있는 정보가 지닌 잠재력은 더욱 올라갑니다. 저는 전산학을 배우면서 그러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더 높이 승화시키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요. 그것을 위해 일종의 지적 사춘기를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기나긴 여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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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 걸림돌이 있더라도 잘 헤쳐 나가시라 믿습니다.
inureyes님의 내/외적 파워는 항상 놀라움을 가져다 주십니다.~~
뭐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안드로메다 관광도 좀 했더니... -_-;;
교주님 파워는 정말... 저도 나름 한가닥하는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만, 교주님이 보내셨을, 보내고 계실 생활을 상상해 보면 깊은 바다 속에 침전하는 느낌이지요.

저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아마 누구나 거쳐가는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관점이나 관심이 각자 달라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고민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고민 없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언젠가 다들 모여서 이런 이야기도 같이 해봤으면 좋겠군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방식대로 분명 이런 고민을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제 또래의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카이스트라는 환경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그나마 대체로 물리과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한 중학교 친구녀석하고 메신저로 얘길 했는데,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저 포함)이 다들 요즘 철학을 고민한다며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왜 제 중학교 친구들만 그러는지 모르겠다더군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늘 흥미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인식론이었고, 지적인 회의론의 견지에서 살면서 가져온 지식과 믿음의 체계를 무너뜨리기도하고 점검하기도하고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주위에는 그런 고민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구요. ^^;
요즘은 그냥 일하는 것에 푹빠져서 고민을 덜하고 삽니다.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성을 가지고.. 이렇게 skepticism을 가지고 사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어요.
한때 관계론에 빠졌다가 지금은 인식론이 중심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은 좀더 많은 사상들을 접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지적 탐구를 시작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지적탐구를 즐거워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공감이 가네요.
우리가 바쁘게 공부하고 일하며 살다보면 주변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입력된(주입식 교육이라고 하지요. 전통이라고도 부르고요) 지식들을 막연히 믿으며 삽니다. 그 지식들이 실제로 맞는 이야기인지 틀린 이야기인지 미처 확인도 못해보고요. 그 중에는 맞는 지식도 있고, 사실에 가까운 지식도 있고, 전혀 틀린 지식도 있습니다. 모든 지식이나 신념이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부분이 틀리거나 근거 없는 것이 많아요.
세계는 하나이고, 우주는 하나이기에, 진실 역시 하나입니다. 진실은 서로 모순을 일으킬 리가 없지요. 문제는,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와, 없는 말도 잘 지어내는 오류와 허풍의 존재라는 타고난 비극이랄까요.
그렇기에 내가 가진 지식, 혹은 세상에서 주장하는 지식이나 세계관이 서로 모순될 때는, 분명히 어떤 부분은 허풍이나 오류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분들의 근거를 찾아내고 근거 없는 주장을 가려내서 제거하는 것은 스스로 할 일입니다. 물론 선인들 중에는 그런 검토를 뛰어나게 하셔서 후세인들의 좋은 참고자료를 만들어주신 분들도 꽤 많지요. 우리가 공부하는 과학이라는 공부가 그런 거겠지요.
근거가 없는 주장도 사실로 믿어버리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오류로 보입니다.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할까요.
어른들, 주변 사람들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 비판적 반성 없이 그 분들의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냥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우리의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의 주장이나 가르침은 틀린 부분이 상당수 섞여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평생 속아살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의심하고 검토해보는 자세는 아주 중요하답니다. 고대, 과거에는 속아사는 비중이 더 컸지만, 그나마 현대로 오면서 자꾸 실증적 사실 확인이 발달해서 예전보다 잘못된 지식에 속아사는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교회 다니신다니 듣기에 어떠실지 좀 저어합니다만,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목사님이 해부학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아담의 갈비뼈가 이브의 갈비뼈보다 하나 적지요? 그러셨답니다. 이건 어느 생물학자분의 책에 실린 저자의 실제 체험담이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문제를 잘 생각해보면, 해답은 나오실 거라 생각합니다. 판단기준이 잘못되면 이렇게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합니다. 성경에서 갈비뼈 개수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판단기준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게 맞거든요. 갈비뼈는 직접 세어봐야 하는 겁니다. 우주와 인생에 대한 지식 역시 마찬가지예요. 남들 말을 막연히 믿으면 속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아온 인류역사인 거지요.
아, 그리고 사람이 왜 신을 믿을까 그런 문제에 대해 과학자분들이 깊이 있게 탐구해서 저서들로 발표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러한 첨단 연구들을 살펴보세요. 너무 옛날 이야기들만 파면 발전이 더딜 수도 있고, 시대에 뒤처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대중의 관념이란 건 학자들의 첨단 연구보다 한참 뒤처지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종교나 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는 신에 대한 관념도, 데카르트의 '나'에 대한 관념조차 철저히 분해 해부되는 시대입니다. 아무래도 옛날 분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진실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한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실에 접근하려고 할 때 최대의 난관은, 자신의 고정관념과 욕망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탐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해서 협박해서 지동설을 발표하지 못하게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거예요. 진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고정관념과는 무관한 것이거든요. 그 사실만 뼈저리게 명심하고 계속 자기 반성을 한다면 세상의 편견, 고정관념에서 많이 탈피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바쁘고 듣고 배운 대로 무심코 다 믿어버리고, 욕망이 강하다보니 자기 반성이 쉽지가 않거든요. 그렇게 속아살다 죽어도 할 수 없고, 그렇게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호기심도 잃어버리고 살다가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자각이 없다면 말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비록 전 심리학 전공은 아니지만 그쪽도 관심이 있는 분야라서) 반갑습니다. :D
특히 종교관이라는 것은 유아기부터 부모와 가족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제 글에서 '심정적으로'라는 말이 이를 보여주기도 하죠. 어디까지 가야 될지 아득합니다.
^^:::
'지적 사춘기'라는 제목이 맘에 든다. ^^
나도 저런 고민을 계속 해왔는데, 주위에 이런 거 같이 얘기할 사람 별로 없지. ㅠㅠ
수학적 진리를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고, 과학적 사실의 한계, 기술의 애매함이 점점 나를 어렵게 하더라. 결국 점점 믿음이라는 단어에 나를 집중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신을 믿어 유신론자가 되든, 자연을 믿어서 범신론자가 되든, 자신을 믿든.. 뭔가 믿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