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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28 긴장과 이완
긴장과 이완
따뜻한 이야기 2007/12/28 03:38정말 폭풍과도 같은 전공 3학년 시기를 끝내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사실 아직 프로젝트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ㅜㅜ)
대학 들어오고 나서 매 학기마다 '아, 이번 학기가 정말 제일 힘들었어'라는 얘기를 6학기째 해오고 있군요; 그래도 이번 가을학기는 지난 봄학기보다는 조금 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봄학기 때 들었던 소프트웨어 공학 개론이라는 원래는 꽤 널널한 편에 속했던 과목이 갑자기 교수님이 바뀌고 대학원 프로젝트를 학부로 끌고내려오면서 엄청나게 빡쎄지는 바람에, 매일 10시간씩 조모임하고 한 자리에 앉아서 해지는 거 보고 해뜨는 거 보고 하기를 수십번... 다른 과목들은 그냥 다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슬픈 기억이 있었죠. (응용미분방정식이라는 과목에서 첫 한 달 동안 쪽지시험 만점을 받다가 나중에는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백지를 냈을 정도니까... 게다가 그나마 열심히 했던 소프트웨어공학개론마저 프로젝트 점수를 사실상 평준화시키고 얼마 비중이 안 되는 시험으로 점수가 다 갈렸죠. 결국 자체 기준으로 재수강 2개 만들고 A를 하나도 못 받은 안습의 학기가 되었습니다.. orz―원래 학기 시작하기 전에는 올A가 목표였는데 말이죠 -_-)
그러고나서는 여름학기 때 운동 + textcube.org 제작 + 동아리 System Programming 세미나 조교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펼쳐놓다가 별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말리고, 가을학기에는 OS 프로젝트 한답시고 계속 바빴습니다. (그래도 OS 프로젝트는 2명이서 하는 거였고 팀메가 룸메였기 때문에 시간 조절이 편해서 체감 로드는 소공개에 비해서 낮았죠.)
하여간 이래저래 지친 상태에서 프로젝트 듀와 함께 이런저런 일이 겹칠 때마다 일종의 패닉 상태 같은 게 찾아오더군요. 봄학기때는 그냥 멋모르고(?) 살았던 것 같은데, 가을학기 때는 OS 2번, 3번 프로젝트 끝날 때 한 번씩 고비가 왔었습니다. 굉장히 할 일은 많은데,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고 괜히 심심하고 말리고 싶고 뭐 그런 상태 말이죠. 2번 프로젝트 끝나자마자 동아리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Workshop 발표도 당일 새벽 1시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밤 꼴딱 새고 유체이탈 상태로 발표하고 게다가 그날 밤에 동아리 홈커밍데이랍시고 선배들과 새벽 5시까지 술마시고 달렸으니...-_-;;
아, 정말 어떻게 살아남았나 싶군요. OS 2번 프로젝트와 워크샵이 끝나고 한동안 휴식 기간을 가졌습니다. 약 2주 정도 정말 그때그때 해야 하는 숙제 말고는 전혀 공부하지 않았죠. (그래도 그런 숙제들을 처리하는 데만도 2~3일씩은 꼬박 걸립니다.) 그래서 그나마 OS 3번 프로젝트와 겹친 기말고사를 버텨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 수리물리 오픈북 오픈타임 14시간짜리 시험이 아주 제대로 피날레를 장식해줬다는...-_-; (그런 시험은 어차피 컨닝 같은 게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정말 끈기 싸움이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조금만 노력하면 거의 퍼펙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3학년부터는 80~90%까지는 금방 되어도 99%, 100%를 달성한다는 게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미리 선행학습하고 뭐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정말 각자의 능력과 노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배들, 부모님이 '인생은 장기 레이스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한 순간 달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계속 해야 할 일들이 물밀듯 밀려오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어떤 것은 완벽하게 성에 차지 않더라도 적당 선에서 포기하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뭐 능력이 좋아서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ㅠㅠ)
또 하나 느꼈던 건, 오토마타 과목을 듣는데 고등학교 동기 친구하고 정말 똑같이 숙제하고 똑같이 시험공부하고 했음에도 시험 결과를 보면 완전 천지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ㅠ_ㅠ; 시험 문제가 주로 증명 스타일로 나오는데(그렇다고 책에 나온 증명을 달달 외운다고 풀 수 있는 문제는 안 나옵니다. 시간 제한은 있지만 오픈북이거든요. -_-), 나중에 그 친구와 함께 얘기해보니 문제를 푸는 스타일이 저랑 완전히 다르더군요.
저는 주로 배운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나만의 언어로 변환·이해하여 그걸 가지고 뭔가 해보는 스타일인 반면, 그 친구는 일단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그걸 맞게 유도하기 위해서 레퍼런스를 뒤지는 스타일입니다. 평상시에 숙제를 하거나 이럴 땐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어려운 증명 문제를 풀어야 할 경우는 친구의 스타일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배우지 않았다면 증명 쪽으로는 일단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으니까 시작을 못합니다;; -_-; 친구한테 어떻게 풀었냐고 물어보면 중간에 감으로 건너뛰고 '그냥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서'라는 게 대부분입니다. 저는 그 풀이를 보고 빠진 부분을 세세하게 채워넣어주는 편이고, 친구는 거꾸로 그걸 보고 '아하~' 이러죠.;; (하지만 오픈북 증명 스타일의 시험이라면 친구처럼 되는 것이 아이디어만으로 일단 문제 답을 구해놓고 세세한 부분은 책을 보며 채워나갈 수 있으니 더 좋겠죠.)
대신에 제가 유리한 경우는 바로 OS(....)와 같은 큰 규모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입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일단 코딩은 빨리빨리 진행시킬 수 있지만, 저는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서 하나하나 쌓아가기 때문에 전체 진행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계속 나아갈 수 있고 중간중간 리팩토링·코드 정리를 자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코드를 보기 편해하는 편입니다. 저는 OS처럼 한 줄 한 줄 고민하며 짜는 경우, 제가 어디를 어떻게 고쳐서 어떤 문제가 왜 고쳐졌는지 거의 다 파악을 하면서 진행하지만, 그 친구의 경우는 진행이 굉장히 빨라서 물어보니 일단 어쩌다보니까-_- 고쳐졌는데 왜 고쳐졌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쨌든 전공이 빡세지면서 그러한 개개인의 특징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지도교수님과 면담했을 때 교수님이 절 보고 '실무적 개발 능력은 학부생 수준에서는 이미 충분하고도 남는(?)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이론적 기초를 좀더 닦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사실 그래서 수리물리를 듣고 수학적 intuition을 키우고자 한 것이긴 합니다만... (.....)
죽죽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제목하고는 먼 글이 되어버렸군요;; 아무튼 과제하다가 더이상 말리지 않기 위해 이만 접습니다. 결론은 한 학기 동안의 푸념. (...)
ps. 이 글을 쓰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거쳤습니다. (...) 바로 이 글과 동일한 버그 때문인 것 같군요. OTL;;; 그야말로 딱 걸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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