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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차원

머리아픈 이야기 2007/05/23 20:08 by daybreaker

요즘 제가 다니는 학교는 한창 축제 기간입니다. 아는 사람들을 통해 주점 초대(라 쓰고 강매라 읽는...)를 받고 있으나 이놈의 학교가 축제 기간에도 놀도록 놔두질 않아서 숙제하거나 자거나 혹은 기타 삽질(!)을 하느라 못 가고 있습니다.

그저께, 그러니까 월요일 밤 늦게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갔는데요, 거기서 한 후배가 그날따라 좀 달리더니 평상시 쌓였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뭐 다들 즐거운 분위기에서 왁자지껄 떠드는데, 그 녀석이 하기 시작하는 말이 왈, "형하고 나는 dimension이 달라서 span할 수 있는 subspace가... (생략)" ...

갑자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생각이 나서 써봅니다.

수학이나 과학, 공학 분야를 전공하지 않는 분들은 차원이라고 하면 보통 점이 1차원, 평면이 2차원, 입체가 3차원,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시공간 뭐시기 하는 게 4차원... 정도라고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차원의 개념은 매우 넓습니다. (아, 갑자기 물리학 전공하시는 교주님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려니 쑥스럽군요.. orz)

차원(dimension)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질이 바로 직교(orthogonality)입니다. 대수적으로 말하면 서로 다른 차원의 값은 상대방에게 상수를 곱해서 얻어질 수 없어야 한다고 볼 수 있죠. (여기서는 엄밀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_-) 하나의 차원에 속한 원소들은 다른 차원에 속한 원소들과 orthogonal하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개념을 vector부터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function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sin과 cos은 orthogonal합니다)

선형대수학에서는 어떤 임의의 n차원 공간(subspace)을 만들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선형 독립(linearly independent)인 vector 집합을 basis라고 부르고, 이들이 그 subspace를 span한다고 표현합니다. 선형 독립이라는 것도 결국 orthogonal이라는 성질로부터 나오는 것이죠.

이렇게 넓은 의미로 차원을 정의하면, 우리가 3차원에서 세 축이 항상 90도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적절한 변환(transform) 하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등 뭐 상당히 일반적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차원 개념은 공학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로봇 제어를 모델링할 때 6자유도(degree of freedom), 즉 6차원 배열을 이용하기도 하죠. (보통 이것을 그대로 쓰기에는 복잡해서 적절한 constraint를 추가해 차원 수를 줄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하고자 했던 얘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아까 술자리에서 한 후배가 했다는 얘기 말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차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수학적이거나 물리적인 의미의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사람의 차원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제게는 오래 전부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주머니 이론"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어도, 가능한 많은 것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것은 부모님의 교육 철학에서도 잘 나타나, 제게 항상 주문하시는 것이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닫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적으로, 재능 측면에서 많은 주머니를 달고 다닐 수 있도록 하라는 비유를 하십니다.

이 말을 바꿔보면, 많은 차원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볼 수 있겠죠. 음, 제가 생각하기에, 둘이 붙여놓았을 때 완전 쌩뚱맞다고 생각되는 분야들을 잘 다룰 수 있다든가, 혹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 적어도 개론 수준은 이해를 하고 있다든가 하면 그만큼 차원을 더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주님의 경우는 물리학과 전산학을 복수전공하셨기 때문에 2개의 차원, 혹은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물론 다른 측면의 것들도 많이 갖고 계시겠지만요.) 저 같은 경우는 전산학, 건축과 디자인, 피아노 연주 등이 각각 하나의 차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햇병아리(?) 학부생이지만, 점점 학문 융합의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껴집니다. 비단 학문 뿐만이 아니라, 대중 문화와 예술, 일상 생활의 많은 것들이 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어쩌면 많은 기능들을 흡수하고 있는 컨버전스 기기인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바야흐로 T자형 인간상이 요구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자신이 가진 것들 중 어떤 것들이 서로 orthogonal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자신의 차원을 확장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존에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잘 조합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후배 녀석의 한 마디 덕분에 간만에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사람에게 술이 필요한 걸까요? 아직 거기까지는 답하지 못하겠군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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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er(아침놀)입니다. 현재 KAIST 전산학과에 재학 중이며 전산 외에도 물리, 음악, 건축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Needlworks 내에서는 각종 홈페이지 제작 및 서버 관리 등과 함께 Textcube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 http://daybreake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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